윤보선 대통령 생애

생애와 발자취

그가 말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근대 민주주의 사회, 곧 시민사회를 의미했다.

해위는 언제나 “상식”을 이야기 했다. 그가 말하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근대 민주주의 사회, 곧 시민사회를 의미했다. 그의 삶의 여정이 저항과 책임의식의 발현이었다면 의회민주주의로 귀결되는, 인간의 자유가 보장되는 근대 시민 사회 구현이 그의 삶의 목표였다.

해위는 쉴 새 없이 저항했다. 불의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해서는 철저히 저항을 하였던 것이다. 유신체제를 거부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그는 재야운동의 실질적 지도자였으며 존재 그 자체였다. 그의 민주화 운동은 김영삼과 김대중에게로 이어졌다.

1980년의 ‘서울의 봄’, 곧 민주정부 수립이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해위는 남은 여생을 정원을 가꾸며 지냈다. 이 시기 자신의 직업을 ‘정원사’라 했다. 1990년 7월 18일, 여생을 마친 해위는 그가 태어난 아산으로 돌아갔다. 가족장을 고집한 그와 그의 가족들은 전직 대통령의 신분을 내세우지 않았다. 해위를 끝으로 한국 정치에는 더 이상 한국 사대부가의 전통, 곧 준엄한 비판정신으로 시대와 사회의 방향을 제시하는 철인(哲人) 정치는 막을 내렸다. 해위 이후, 그런 정치가도 더 이상 없었다.

대일 굴욕외교 반대 성토회에 참석한 윤보선, 함석헌, 장준하

김대중, 김영삼, 윤보선(좌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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