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선 대통령 생애

생애와 발자취

박정희는 국수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민족적 민주주의”를
외친 반면 윤보선은 대한민국 헌법이 채택한 자유민주주의를 고집했다.

대통령직에서 하야한 후 1963년 제 5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해위는 “군정으로 병든 나라 민정으로 바로잡자”며 국민들에게 민주주의를 호소했다. 그러나 15만6천 표차로 낙선했다. 이 때 그의 지지자들은 해위를 가리켜 “정신적 대통령”이라 이름 붙였다. 부정선거로 인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고 믿었던 것이다.

박정희와 윤보선과의 갈등은 첨예했다. ‘가난한 농민의 아들’임을 강조하였던 박정희가 ‘10월 유신’으로 귀결되는 국가주의를 표방했다면 사대부가 출신인 윤보선은 정통 의회주의를 주장했다. 박정희는 국수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민족적 민주주의’를 외친 반면 윤보선은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했다. 박정희는 국가주도의 일본식 근대화를 선호했고 윤보선은 영미식의 근대주의를 신뢰했다. 박정희가 ‘조국의 근대화’를 구호할 때, 윤보선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다. 두 사람의 갈등의 근원은 사상의 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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